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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21 수능얘기
2016. 11. 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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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2001년 수능 (수능을 본건 물론 2000년). 수시모집에 합격하면 정시에 지원할 수 없던 때였다. 수능 백분위 10% 정도의 조건이 수시 합격자들에게 붙어 있었다. 80만명 중 8만등인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는지 동재단 여고 선배 중 한 분이 연세대인가 수시 합격했다고 반 전체에 짜장면을 돌렸으나 수능 10% 미달로 불합격했다는 이른바 '짜장면녀[각주:1] 사건'이 동네에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2. 자연계 학생들의 제2 외국어 점수를 반영하는가 안하는가는 계속 바뀌었다. 결국 고3 1학기 초에 대부분의 대학이 자연계 학생들의 제2외국어 점수를 입시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발표했고 3학년 시간표의 중국어 일본어 수업은 그대로 사라졌다.


3. 수능 원서 작성일. 나는 원한다면 제2외국어를 볼 수는 있고 원서비는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했고 같은 값이면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중국어 응시 항목에 체크해서 원서를 접수했다. 재수 삼수하는 선배들이 이날만큼은 모교에 와서 함께 원서를 작성했다.


4. 수능 일주일전쯤 시험장이 발표되었다. 이날 나는 이과반에서 제2외국어를 신청한 학생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교 (10개 반 400여명) 에서 나 혼자만 동수원의 모 중학교로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제대로 스타가 되었다.


5. 모 중학교, 예비소집일에 가보니 집에서 버스로 40분 가량이 걸렸다. 교통정체를 우려한 아버지가 결국 차로 태워다 주셨다. 교실에 들어가보니 머리를 노랗고 붉게 물들인 장수생 형님들이 많이 보였고 응시 과목도 에스파냐어 러시아어 등등 현역[각주:2]에 중국어 응시인 내가 노말해 보였다. 


6. 휴대폰 전원을 끄고 배터리를 분리한 후 가방에 넣었다. 휴대폰 관련 규정은 딱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반에 휴대폰 가진 친구가 열 명이 채 안되었던 시기였다. 2004년 휴대폰 수능부정사건이 터진 후 규정이 강화되었다.


이번 수능 부정행위 사건에 연루된......

http://underheaven.blog.me/140007970331


[오늘의 역사]11월19일:12년 전 수능 괴담이 현실로... 광주, 휴대전화 컨닝 ‘파장’

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611182240



7. 내가 시험을 마쳤을 시간에 이미 시내에서는 수능 끝난 고3들이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교실보다 한시간 늦게 끝났으니..... 전날에 벼락치기를 두시까지 한 까닭에 자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나오다가 교문에 있던 아저씨에게 답지를 2천원 주고 샀다. 집에 와서 정답을 맞추다보니 언어영역밖에 없었다. 속았다. 그러고보니 답지팔던 아저씨 전과목이라고 한적은 없다. 


8. 집에 와서 천리안(아버지 ID)에 접속해서 답지를 찾아보았으니 PC통신을 전혀 사용해보지 못한 나는 답지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PC방에 가서 인터넷으로 정답을 맞춰보고 스타를 몇 판 하고 집에 왔다. 점수가 지나치게 잘나와서 서울대는 백프로인줄 알았는데 그다음날 신문을 보니 사상 최고의 물수능...... 만점자도 불합격했던 해였다. 우리 바로 다음이 그 유명한 이해찬 세대다.


9. 대학 원서는 서점에서 구입하여 작성 후 해당 대학에 가서 줄서서 제출해야 했다. 서울대에는 뉴스에서나 보던 실시간 경쟁률 게시판이 있었다. 인터넷 접수가 가능한 대학[각주:3]도 있었으나 ADSL 등의 초고속인터넷이 이제 막 가정에 깔리기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무엇보다 아직 인터넷을 그렇게 믿지 못하던 시대였다. 인생이 걸린 일인데 역시 종이에 적어서 직접 갖다 건네줘야 믿을만했다.



한줄요약.


삐삐와 휴대폰, 특차와 수시모집, 종이원서와 인터넷 접수, 천리안과 PC방이 공존했던 세기말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1. 지금은 이런 작명이 옳지 않음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때는 20세기. [본문으로]
  2. 수능을 처음 보는 고3 [본문으로]
  3. 인터넷 접수만 가능한, 시대를 앞서가는 대학도 있었다. 숙대가 그랬던 것 같은데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던 학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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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