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9. 12:49
반응형

0. 나는 1989년작 인어공주는 물론 TV시리즈도 본 적이 없다. 영화 보기 전까지 인어공주가 원작처럼 마지막에 거품으로 사라질 줄 았았다. 주연인 핼리 베일리 (Halle Bailey)도 누군지 몰라서 처음 캐스팅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핼리 베리 (Halle Berry, 66년생)가 주연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1. 먼저 드는 생각은, 상영 시간이 너무 길다 (135분). 보통 저연령층 대상 작품은 90분 내외로 극장에 걸린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아쉬운 대목.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도 힘들다고 느낄 만 한 긴 상영시간이다.
 
2. 그러면서도 긴 상영시간 내내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관객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면 길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좀 아쉬웠던 점이, 대다수의 관객은 이미 다음 장면에 뭐가 나올지 알고 있는데도 늘어지는 전개가 많았다. 특히 바닷속 장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제작비로 찍을 수 있어서인지 아리엘이 뭍에 올라가고 나서 마녀가 다시 등장하기 전까지의 장면이 너무 길어서 관객의 긴장감이 뚝 떨어진다. 아리엘에게 다리가 생겨서 기분이 좋고 신난건 백분 이해가 되지만, 관객들은 바닷속 장면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3. 기술적인 우열은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아쿠아맨>이나 <아바타2 물의 길>과 비교했을 때 바닷속 풍경이 어두워 보이고 그래서인지 표현 수준도 떨어져 보인다. 앞의 두 작품보다 더 저연령층 대상이고, 코메디와 뮤지컬 영화 요소도 있는 작품이니 아쉬웠던 점. <아쿠아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바다에서 올라와서 꽃을 음식으로 오해하고 먹는 장면이 둘 다 들어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아쿠아맨은 메라가 꽃을 먼저 먹자 민망해하지 않게 자기도 따라서 먹었다는 점. 이쪽이 더 왕자님 같다. 1989년작 원작 애니를 안봐서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4. 계속 아쉬운 점만 나열하고 있는데, 인어공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Under the sea'의 실사 재현이 매우 훌륭했다. 등장하는 바다생물의 종류도 많고, 조개껍데기 연주같은 만화적 표현이 없어 더 세련됐다. 위에서 어두운 바닷속 분위기가 아쉽다고 했지만 이 노래 도중의 발광 해파리 장면은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인어공주는 해파리에 쏘이지 않는 모양).
 
5. 아리엘의 단독 넘버 'Part of your world' 또한 줄거리에서 맡은 큰 역할만큼 잘 소화해냈다. 할리 베일리가 이 영화 주연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래로 회복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신선한 연출. 다만 1990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에 빛나는 'Under the sea'가 있는 만큼 아무리 줄거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더라도 인지도에서 밀리는 것은 흠.
 
6. 'Under the sea'의 연출에도 이상한 점이 있는데 이 노래는 세바스찬이 바닷속의 아름다움을 아리엘에게 다시 일깨워주려고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1989년 애니에서는 아리엘이 중간에 플라운더의 귓속말을 닫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마지막에 바다생물들이 아리엘의 빈 자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번 실사판의 아리엘은 중간부터 세바스찬 및 바다생물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기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말 안하고 사라지는건 둘다 똑같지만, 후자가 더 극적인 연출이고 매사에 적극적인 아리엘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세바스찬을 기만하는 행동으로 볼 수 밖에. 뭐 내가 공주인데 어때 라면 할 말은 없지만. 다만 아리엘이 함께 'Under the sea'를 부르는 장면이 처음은 아니다. TV시리즈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덕후라면 다 알고있는 스퀘어에닉스의 게임 <킹덤하츠>에서도 소라와 함께 아리엘이 중간부터 노래를 함께 부른다. 아무래도 세바스찬 혼자 부르는 것보다 그림이 잘 뽑히기 때문에 실사판에서도 이렇게 연출한 듯 하다.
 
https://youtu.be/GC_mV1IpjWA

1989년작에서의 'Under the sea'

https://youtu.be/vDbw8Tst5n8

게임 킹덤하츠2에서의 'Under the sea'

https://youtu.be/Wbv_huklr5E

2023년 실사판의 'Under the sea'

8.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극중 에릭 왕자의 파이팅 넘치는 성격이다. 주연이지만 주연이라고 할 수 없는 등장인물이기에 그 서사가 자세히 그려지기는 힘든 한계가 있는데, 극중 묘사만으로도 무한한 열정을 가진 모험가임을 알 수 있다. 육지로 올라온 아리엘과 접점을 느낀 부분도 모험 이야기였고, 부하들이 불쌍할 정도로 계속해서 바다로 나간다. 우여곡절 끝에 바다의 왕을 장인으로 모시게 되었지만 그걸 이용해 육지 세상의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은 전혀 없고 이번엔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니, 아리엘 혼자서 주장하기 부족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7. 캐스팅 논란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같은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면 될 것 같다. 연극에서는 최대한 분장 등으로 배우의 외모를 원작의 분위기와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얼굴 생김새나 피부색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핼리 베일리가 디즈니 실사영화 단독 주연을 맡을 만큼 '클래스'가 있는 배우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출발점이 연극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캐스팅 논란은 별 문제가 아니다.
 
8. 아리엘의 언니들의 묘사나, 마지막의 인어 주민들의 배웅 장면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인종 구성은, 전세계 인류보다는 미국 사회를 대변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때문에, '인어공주는 이민자 서사'라는 트위터발 밈에도 백번 공감한다. 남의 나라에서 목소리를 잃고 말못하고 살아가는 이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물론 아리엘은 육지 세상에서도 리스닝에는 문제가 없다).

반응형
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