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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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현지시간) 열린 2023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022년작 '나발니'가 다큐멘터리 영화상을 수상했다. 나발니는 러시아의 야당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영화로, 이미 2022년 선댄스 영화제에도 출품, 관객상과 인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Navalny (2022)

https://m.imdb.com/title/tt17041964/?ref_=nm_flmg_c_1_prd

 

Navalny (2022) - IMDb

Navalny: Directed by Daniel Roher. With Alexei Navalny, Yulia Navalnaya, Dasha Navalnaya, Zakhar Navalny. Follows the man who survived an assassination attempt by poisoning with a lethal nerve agent in August 2020. During his months-long recovery he makes

www.imdb.com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번 수상의 의미는 작지 않다. 다만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제작자 중 협력 프로듀서로 글로리아 합스부르크 (이하 글로리아)가 이름을 올렸기 때문.

produced by 
Diane Becker	...	producer (p.g.a.)
Shane Boris	...	producer (p.g.a.)
Mia M. Bruno	...	Impact Producer
Geralyn White Dreyfous	...	Social Impact Executive Producer
Amy Entelis	...	executive producer
David Fialkow	...	Social Impact Executive Producer
Nina Fialkow	...	Social Impact Executive Producer
Gloria Habsburg	...	associate producer
Alexandra Hannibal	...	supervising producer
Melanie Miller	...	producer (p.g.a.)
Maria Pevchikh	...	executive producer (as Mariya Pevchikh)
Odessa Rae	...	producer (p.g.a.)
Courtney Sexton	...	executive producer
Jim Swartz	...	Social Impact Executive Producer
Susan Swartz	...	Social Impact Executive Producer
Danielle Turkov	...	impact producer
출처:https://www.imdb.com/title/tt17041964/fullcredits/?ref_=tt_cl_sm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한 글로리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중동,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를 알려 왔고 2020년부터 영화 나발니의 협력 프로듀서로 일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패션모델이나 자동차 레이서를 직업으로 택한 그의 언니, 오빠와 달리 글로리아는 다소 정치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직 젊은 나이강백호랑 동갑이기 때문에 앞으로를 지켜보면 흥미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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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
2022. 6. 12.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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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엔 돈벌려고 일하는 것임에도 엄마들의 직업은 창피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동네 사람 다 아니까 숨기기 힘든 전문직이나 자영업 종사자를 제외하면 스스로 자녀들에게 학교가서 엄마 일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입 단속을 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눈치가 없는 건지 빠른 건지 교사들은 엄마들이 학부모 행사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으면 아이들을 닥달했고 아이들은 머뭇거리다 실토하기도 했는데 그런 엄마들의 직업은 주로 동네 작은 공장의 생산직이었다. 생활비 몇 푼 보태겠다고 일하던 엄마들을 누구도 응원하지 않던 시기였다.

 

자영업 얘기도 보태자면, 어엿한 사장님들인 부모의 직업이 학교에서는 놀림감이기도 했는데 이걸 말리기는 커녕 주도하던 교사들도 많았다. 주로 나이든 교사들이 학생들을 이름대신 '세탁소', '철물점' 이나 '시계방' 등으로 불러대던 대환장 교육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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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
2022. 6. 12.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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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선생님이 생전에 지목한 사람도 좋지만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 부담이 큰 자리 이기는 하다. 주 1 회 야외 행사진행할 체력, 춤, 노래, 입담 다 되면서 말실수 적고 연차도 적당히 있어서 대미지 컨트롤도 문제없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송해 같은 MC는 송해뿐인데…‘전국노래자랑’ 후임자 고민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46288.html

 

송해 같은 MC는 송해뿐인데…‘전국노래자랑’ 후임자 고민

이수근, 이상벽 등 다양한 세대 후보 거론송해 하차했을 때 시청자 항의폭주 역사도구수한 송해 색깔 이을 후임자 찾기 만만찮아

www.hani.co.kr

이상벽씨는 아무래도 부담이 큰 것 같은데 이런 장수 프로그램을 추모의 시간 갖는다고 몇 달씩 쉬면 시청자들은 금방 잊고 다시는 찾기 않을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고사한다면 일단 임시  MC 체제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레 정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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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
2018. 2. 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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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생이니 20세기 카테고리에 맞는...


Evgenia Medvedeva 또는 

Медведева, Евгения Армановна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 아르마노브나)




사실 본인은 외국 선수의 포스팅을 뜬금없이 올리는 짓이 처음이 아니다.


안드레아 라두칸

Andreaa Raducan 

http://underheaven.blog.me/140010136074


아무튼 메뎁 양에 대한 포스팅을 갑자기 올리는 이유는 이 친구의 덕력 때문! 마지막 두 명의 연기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 친구의 연습 장면을 잠깐 비춰 주었는데 범상치 않은 표정과 못짓이 평범한 친구는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팍 왔다. 연기는 피겨알못 내가 볼때는 표현력은 좋은데 기술은 평범한 듯 했는데 (점프괴수 러시아 선수 치고는) 그 표현력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투머치인지 뭔가 어색하다는 평이 많았다. 뭐 이런건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덕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한국 컬링 대표팀 리더 김은정 선수의 건프라 등도 화제가 되기도 한 이번 올림픽은 젊은이들의 덕력 또한 맘껏 펼쳐진 대회이기도 하다.




자 우리의 메뎁 양은 엑소 춤도 추시고







교토에서 기모노도 입으시고



그리고 뭇 덕후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대망의 갈라쇼 세라문 변신.. 소품이며 변신장면 등을 보면 보통 덕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1999년생이면 세라스타즈도 끝나고 태어난 세대인데 어쩌다가 이런.....










얜 또 뭐하니....





2018 평창 올림픽의 은메달 축하합니다, 성공한 덕후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 선수

Congrats, Evgenia Medvedeva

Поздравляю, Евгения Медведева





엑소 만났어염 뿌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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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
2017. 5. 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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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노래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릎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리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대머리야 쪽바리야 양키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아트액추얼리] 유튜브 음악산책 13.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오월의 노래’

http://www.vop.co.kr/A00000887754.html

 

<오월의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광주항쟁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작사가는 미상이나 곡은 프랑스의 샹송 가수 미셀 폴나레프의 곡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Qui a tue grand maman>를 편곡해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월의 노래’의 뿌리를 두고선 여러 추측이 있지만 프랑스 노래인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maman)’의 선율에 가사를 붙여서 만든 노래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Qui A Tue Grand-maman’을 들어보면 왜 이 노래를 ‘오월의 노래’의 원곡이라 말하는 지 금방알 수 있다. 다만 원곡의 비극적 멜로디는 편곡의 과정을 거치며 행진곡 풍으로 바뀌었다.


프랑스 가수인 미셀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1971년 만든 ‘Qui A Tue Grand-maman’은 인터넷 상에서 ‘과거 프랑스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루시앙 모리세(Lucien Morisse)라는 할머니가 자신의 정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노래는 바로 그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과 프랑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같은 정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루시앙 모리세의 추모와 관련된 노래이긴 하지만 그는 남성이고, 40대 초반에 자살한 프랑스의 TV프로듀서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흔히 알려진 루시앙 모리세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언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셀 폴나레프가 루시앙 모리세를 추모하기 위해 쓴 곡인 것은 맞는데 그는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할머니가 아니라 40대 초반에 자살한 프랑스의 TV프로듀서였고 이 이야기의 출처로 위키피디아를 적고 있다. 하지만 Lucien Morisse라는 영어 위키피디아 항목은 없고 프랑스어 항목은 있다.


Lucien Morisse, ne le 9 mars 1929 a Paris 11e arrondissement - mort le 11 septembre 1970 dans la meme ville, a ete directeur des programmes a Europe n° 1 et le directeur general de ≪ Disc'AZ ≫. Il a decouvert de nombreux talents : Marino Marini, Dalida, Petula Clark, Christophe, Pascal Danel, Nicole Rieu, Saint-Preux, Michel Polnareff, Gilles Marchal, Hubert Wayaffe, Micberth, Michel Cogoni, etc.


Biographie[modifier | modifier le code]

Ancien discothecaire a la RTF, Lucien Morisse est remarque par Pierre Sabbagh qui lui confie, en 1950, l’illustration sonore, a l’epoque assuree en direct, du journal televise. Il est appele, en 1956, par les fondateurs d’Europe n° 1 pour donner un style de radio populaire et vivant ; il a ete pour beaucoup dans le succes de la jeune station.


Lucien Morisse est surtout celui qui importa en France la playlist en vigueur sur les radios americaines, dont le principe est de multi-diffuser un titre afin d'en faire un tube.


En avril 1960, Lucien Morisse, alors responsable de la programmation musicale d'Europe n° 1 et animateur de l'emission Le Discobole, casse en direct le premier disque de Johnny Hallyday. Arlette Tabard, secretaire generale a la Sacem, temoigne : ≪ Tres vite, j'ai commence a realiser son emission Le Discobole, avec Jean Peigne. C'est la qu'il a casse le disque de Johnny en s'exclamant a l'antenne : ≪ Voila un disque que vous entendez pour la premiere et la derniere fois ! ≫. C'est l'une des rares fois ou l'on s'est engueules. C'etait en fait une provocation de sa part ! ≫


La legende veut que Morisse ait manque d'intuition sur Halliday mais la realite est plus simple : le disque en question, sorti un mois plus tot, etait une reprise d'une chanson de Dalida, le grand amour de Morisse : T'aimer follement.


Lucien Morisse suscite la creation de l’emission Pour ceux qui aiment le jazz de Daniel Filipacchi et Franck Tenot, de Musicorama, puis celle d’un programme specialement destine aux teenagers qu’il baptise lui-meme Salut les Copains.


Le 8 avril 1961, il epouse Dalida apres cinq ans de vie commune, mais leur mariage ne dure que quelques mois. En 1963, il epouse la mannequin Agathe Aems1. Ils ont deux enfants.


Lucien Morisse s'est suicide par arme a feu, le 11 septembre 1970, dans son appartement du 7 rue d'Ankara a Paris, a l'age de 41 ans.


Michel Polnareff a compose la chanson Qui a tue grand-maman ? (1971, album Polnareff's) a sa memoire.


물론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뭔소린지 알수가 없으니 구글 번역을 이용해 보면


Lucien Morisse, born March 9, 1929 in Paris 11th district - died September 11, 1970 in the same city, was program director at Europe 1 and the general director of "Disc'AZ". He discovered many talents: Marino Marini, Dalida, Petula Clark, Christophe, Pascal Danel, Nicole Rieu Saint-Preux, Michel Polnareff, Gilles Marchal, Hubert Wayaffe, Micberth Michel Cogoni, etc.


Biography [edit | edit the code]

Old music librarian at the RTF, Lucien Morisse was noticed by Pierre Sabbagh who entrusted him in 1950, the sound design at the time provided live newscast. It is called in 1956 by the founders of Europe No. 1 to give a popular radio-style living; he was instrumental in the success of the young station.


Lucien Morisse is especially one who imported in France Playlist in force on US radio, the principle of multi-broadcasting a title to make a tube.


In April 1960, Lucien Morisse, then in charge of music programming in Europe No. 1 and program host Discobolus, live breaks the first disc of Johnny Hallyday. Arlette Tabard, General Secretary of Sacem, says: "Very soon I began to realize his show The Discus Thrower, with Jean Peigne. There he broke the record of Johnny exclaiming to the antenna, "Here you hear a disc for the first and last time! ". This is one of the few times we had yelled. It was actually a provocation on his part! "


Legend has it that Morisse has lacked intuition Halliday but the reality is simple: the disk in question, released a month earlier, was a cover of a song by Dalida, the great love of Morisse Te follement .


Lucien Morisse initiates the creation of the show for those who love jazz Daniel Filipacchi and Franck Tenot of Musicorama and that of a program specifically designed for teenagers he dubbed himself Hi Buddies.


On April 8, 1961, he married Dalida after five years together, but their marriage lasted only a few months. In 1963, he married supermodel Agatha Aems1. They have two children.


Lucien Morisse committed suicide by firearm, September 11, 1970, in his apartment on 7 rue d'Ankara to Paris at the age of 41 years.


Michel Polnareff composed the song Who killed Grandma? (1971, Polnareff's album) in his memory.


루시앙 모리세는 TV 프로그램 제작자로서 미셀 폴나레프를 비롯한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1971년에 총기로 자살한다. 사람이 자살한 이유를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이런 곡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 봐도 그의 사망이 프랑스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미셀 폴나레프는 이 곡을 통해 그를 추모한 것이고 가사의 할머니가 루시앙 모리세를 뜻한다는 점은 사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노래의 가사가 사실과 합쳐져 가사의 할머니의 이름이 바로 루시앙 모리세인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 같다.


*추억의 명곡, 달리다와 알랭 들롱의 ‘빠롤레 빠롤레’*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nounkwak&cid=345566&fod_no=6


텐코의 자살과 자신의 자살미수 후 달리다는 또 한번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마돈나’ - 성녀 달리다의

이미지를 각인하기 위해 달리다는 흰색의 긴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또한 철학에 관심을 갖고, 프로이드와 융을 읽으며 요가를 하는 등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강인하게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인도를 방문하기도 헸다.

내적 성숙을 추구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공연활동은 계속되었고,

달리다는 가는 곳마다 팬들의 환호와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가혹한 운명의 손길은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1971년 전 남편 루시앙은 그녀가 한껏 성공을 누릴 때..

자살을 감행하여 달리다를 또 한번 충격에 빠뜨린다.


올해로 71세인 폴나레프는 1971년 당시 루시앙 모리세를 꽃이 피고 새들과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노래하던 정원을 가꾸던 할머니라고 묘사했다. 정원은 아마 음악을 뜻하겠고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어져 굴삭기와 불도저를 동원한 사람들, 즉 대중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68혁명이 좌절된 1971년 20대 후반의 폴나레프는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던 보수 드골주의자들을 굴삭기와 불도저를 동원하여 예술을 짓밟은 대중으로 묘사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로운 죽음이라고 높였다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세태의 희생양으로 보았다거나, 반대로 그가 없는 사회가 바로 파헤쳐진 정원이라고 여겼다고 보면 적당하다.


May 68, the Revolution in Music

From Protest songs to Radical new sounds

http://www.rfimusique.com/musiqueen/articles/101/article_8059.asp


우리나라에는 오월의 노래 말고도 이루마의 편곡 <When the love falls>로도 유명하다. 위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불렸다는데 폴나레프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루마가 표절했다며 유투브 댓글 등에서 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는 이루마 > (오월의 노래) > 폴나레프 이지만 영미권이나 프랑스에서는 그 반대인데 최근 영미 프랑스권 젋은이들이 역사도 모르고 이루마 곡이 듣기 좋다고 하고 있으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심통이 날 만도 하다. 물론 이들도 그냥 음악 좋아서 듣는건데 뭔 훈장질이냐며 같이 키배중ㅡㅡ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도청 앞 발포 장면에 이루마 버전의 피아노곡이 삽입됐다.


기사에서도 링크된, 제대로 된(?) 오월의 노래. 폴나레프의 원곡을 포함한 나머지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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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
2017. 4. 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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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 나는 왜 韓日 역사의 터부를 부수는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7455


기동전사 건담 디 오리진의 작가이자, 무지개빛 트로츠키, 왕도의 개 등 역사물을 그려온 야스히코 요시카즈(安彦良和·1947~) 선생의 최근작 하늘의 혈맥을 최근 접할 수 있었다. 내용을 풀어가기도 어렵고 반응도 껄끄러워서인지 일반적으로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는데 (예를 들어 고스트 바둑왕 같은 경우 - 바둑에서 한국을 빼고 이야기를 풀 수는 없으니) 무지개빛 트로츠키, 왕도의 개와 하늘의 혈맥에는 한국이 주 무대로 등장하고 한국인 캐릭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것도 상당히 우호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김옥균에 대한 시선에서, 젊은 선각자이자 동시에 친일 역적이었던 그를 바라보는 애증이 넘치는 한국인들의 시선과는 다르게 그를 무한칭송하는 면모를 보인다. 이는 당대는 물론이고 현대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한다. 그외 전봉준이나 안중근도 그의 작품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그의 작품 전체가 변질된 아시아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하는 만큼 한국인 캐릭터들은 비판의 수단으로써 이용되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기사에서도 보듯 안중근에 대한 후한 평가는 그의 동양평화론 때문이지,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인의 눈으로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서술이 종종 있다. 노르망디 공작으로서 잉글랜드를 정복한 윌리엄 1세에게 정복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준 영국의 이야기라던가, 네덜란드 해적의 침공을 받은 남미 에스파냐 식민지의 방어전을 독립전쟁처럼 묘사하는 현 남미 국가들 같은 경우 말이다. 윌리엄 1세는 단순한 외국 침략자가 아닌 현재 영국 왕가로 이어지는 핏줄의 조상이고, 남미 국가들에게 에스파냐 식민제국은 자국의 전신이기 때문인데 비슷한 역사가 없는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임나일본부에 대한 일본의 시각도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하늘의 혈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진구 황후가 낳은 황자의 아버지를 광개토대왕으로 조작하자는 우치다 료헤이의 주장이 나왔던 면담 장면이었다. 비록 픽션이지만 천황가의 조상을 고대 한국의 군주로 조작하자니,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치욕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직 서방에서 서로마가 멸망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백제, 가야를 넘어 고구려까지 자국의 역사로 어떻게든 편입하려는, 일본의 앞뒤 안가리는 치열함은 변질된 아시아주의로 나아갔고 이는 후일 일본 제국의 모토인 대동아공영권의 뿌리가 되었다. 임나일본부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논리로 이용되는가에 있었던 것이다. 작중 안에서 중국 혁명가 송교인 또한 주인공 아즈마 아키라에게 '당신의 역사 연구는 양날의 검'이 라며 우치다에게 휩쓸리지 말 것을 주문한다.


에가미 교수의 기마민족 일본정복설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3164&C_CC=AZ


작가는 한국인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일본 작가가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해 묘사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일인데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하늘의 혈맥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한국인은 두 명이다. 가상의 인물인 류두성과 실존인물인 안중근인데, 먼저 류두성은 택견으로 보이는 무술(작품 내에서는 중국 의화단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대사가 나온다)의 달인이며 조선을 일본같은 강국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우치다의 주장만 믿고 그를 따르다가 그의 실체를 알고 암살을 꾀한다. 안중근은 매우 호탕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한국과 일본은 형제라는 아즈마에게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냐고 끝까지 캐물어 당연히 한국이 형이라는 대답을 듣고야 만다. 그리고 한양 도성의 상황을 접한 주인공 내외의 대사를 통해 한국인들의 자존감은 무척 강하지만 그것이 독이 되고 있다는 표현을 한다. 작가는 류두성을 통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어리숙함을, 안중근 등의 모습에서는 과거에 사로잡힌 한국인들의 근거없는 자존감을 지적하고 있다.


껄끄러운 소재, 시대를 다룬 작품을 연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작가이지만 이미 고령이기에 앞으로 이런 좋은 작품을 많이는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개화기~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들은 보통 민족주의에 호소하거나 조선이 해준게 뭐냐 이런 쿨병을 내다가 망작이 되곤 한다.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역사를 제대로 관통하는 이런 작품들이 앞으로 계속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마침 아나키스트 박열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포스터부터가 뭔가 홍길동스러워서 우려가 되기는 하지만 유치한 거대담론을 내세우기보다는 박열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그려주고 흥행도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박열>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7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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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
2016. 12. 4.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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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전두환, 교도소 가는 길

http://v.media.daum.net/v/20161203044234121


21년 전 겨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달리며 취재하던 기자들에겐 잊을 수 없는 차량 번호가 있다. 1995년 12월 3일, 군 형법상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안양교도소로 향하는 검찰 승용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반발한 전두환은 2일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측근들과 골목 성명을 발표한 후 고향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지만 수사팀의 추적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 날은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교회(안양 평촌, 집은 북수원)에 다녀오다가 교회 버스에서 내려 수원행 버스를 타기 위해 호계사거리 부근에 내렸을 때였다. (아직 777번 버스가 없었던 시절.. 원래 시외버스였다가 중간에는 한참 비싼 좌석버스였을 때도 있었고 90년대 후반에 지금같은 시내버스로 정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한성병원 위로 헬기 한대가 큰 소리를 내며 날아와 선회를 하더니 전경들이 안양교도소 앞을 두겹으로 에워쌌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불구경이라도 하러 가는듯 뛰어서 교도소 앞으로 향했고 나도 덩달아 뛰었다.


아침에 본 뉴스가 생각이 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에서 붙잡혀 호송되고 있다고.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는 보지는 못했지만 전두환을 사형시키라며 매우 평화적인 피켓팅을 하던 몇 분을 빼고는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당시 사람들은 정말로 김영삼이 전두환에게 호되게 보복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는지 정말 순순히 교도소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경찰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게 벌써 21년 전이고 그 다음 대통령들 중 세 분이나 이미 세상을 떴고 다른 한 분은 병으로 누워계시지만 그날 내가 교도소 앞에서 봤던 이분은 아직 정정하신 듯 하다.


이상 전두환 (정확히는 전두환이 탄 차) 본 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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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
2016. 11. 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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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2001년 수능 (수능을 본건 물론 2000년). 수시모집에 합격하면 정시에 지원할 수 없던 때였다. 수능 백분위 10% 정도의 조건이 수시 합격자들에게 붙어 있었다. 80만명 중 8만등인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는지 동재단 여고 선배 중 한 분이 연세대인가 수시 합격했다고 반 전체에 짜장면을 돌렸으나 수능 10% 미달로 불합격했다는 이른바 '짜장면녀[각주:1] 사건'이 동네에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2. 자연계 학생들의 제2 외국어 점수를 반영하는가 안하는가는 계속 바뀌었다. 결국 고3 1학기 초에 대부분의 대학이 자연계 학생들의 제2외국어 점수를 입시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발표했고 3학년 시간표의 중국어 일본어 수업은 그대로 사라졌다.


3. 수능 원서 작성일. 나는 원한다면 제2외국어를 볼 수는 있고 원서비는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했고 같은 값이면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중국어 응시 항목에 체크해서 원서를 접수했다. 재수 삼수하는 선배들이 이날만큼은 모교에 와서 함께 원서를 작성했다.


4. 수능 일주일전쯤 시험장이 발표되었다. 이날 나는 이과반에서 제2외국어를 신청한 학생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교 (10개 반 400여명) 에서 나 혼자만 동수원의 모 중학교로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제대로 스타가 되었다.


5. 모 중학교, 예비소집일에 가보니 집에서 버스로 40분 가량이 걸렸다. 교통정체를 우려한 아버지가 결국 차로 태워다 주셨다. 교실에 들어가보니 머리를 노랗고 붉게 물들인 장수생 형님들이 많이 보였고 응시 과목도 에스파냐어 러시아어 등등 현역[각주:2]에 중국어 응시인 내가 노말해 보였다. 


6. 휴대폰 전원을 끄고 배터리를 분리한 후 가방에 넣었다. 휴대폰 관련 규정은 딱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반에 휴대폰 가진 친구가 열 명이 채 안되었던 시기였다. 2004년 휴대폰 수능부정사건이 터진 후 규정이 강화되었다.


이번 수능 부정행위 사건에 연루된......

http://underheaven.blog.me/140007970331


[오늘의 역사]11월19일:12년 전 수능 괴담이 현실로... 광주, 휴대전화 컨닝 ‘파장’

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611182240



7. 내가 시험을 마쳤을 시간에 이미 시내에서는 수능 끝난 고3들이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교실보다 한시간 늦게 끝났으니..... 전날에 벼락치기를 두시까지 한 까닭에 자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나오다가 교문에 있던 아저씨에게 답지를 2천원 주고 샀다. 집에 와서 정답을 맞추다보니 언어영역밖에 없었다. 속았다. 그러고보니 답지팔던 아저씨 전과목이라고 한적은 없다. 


8. 집에 와서 천리안(아버지 ID)에 접속해서 답지를 찾아보았으니 PC통신을 전혀 사용해보지 못한 나는 답지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PC방에 가서 인터넷으로 정답을 맞춰보고 스타를 몇 판 하고 집에 왔다. 점수가 지나치게 잘나와서 서울대는 백프로인줄 알았는데 그다음날 신문을 보니 사상 최고의 물수능...... 만점자도 불합격했던 해였다. 우리 바로 다음이 그 유명한 이해찬 세대다.


9. 대학 원서는 서점에서 구입하여 작성 후 해당 대학에 가서 줄서서 제출해야 했다. 서울대에는 뉴스에서나 보던 실시간 경쟁률 게시판이 있었다. 인터넷 접수가 가능한 대학[각주:3]도 있었으나 ADSL 등의 초고속인터넷이 이제 막 가정에 깔리기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무엇보다 아직 인터넷을 그렇게 믿지 못하던 시대였다. 인생이 걸린 일인데 역시 종이에 적어서 직접 갖다 건네줘야 믿을만했다.



한줄요약.


삐삐와 휴대폰, 특차와 수시모집, 종이원서와 인터넷 접수, 천리안과 PC방이 공존했던 세기말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1. 지금은 이런 작명이 옳지 않음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때는 20세기. [본문으로]
  2. 수능을 처음 보는 고3 [본문으로]
  3. 인터넷 접수만 가능한, 시대를 앞서가는 대학도 있었다. 숙대가 그랬던 것 같은데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던 학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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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