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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19 총몽 알리타 배틀엔젤 Alita: Battle Angel
2019. 2. 1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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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몽 영화판 알리타 짧은 후기.


만화 원작, 특히 총몽같은 고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어쩌면 사극과 비슷하다. 사극에서 역사가 스포일러이듯, 우리는 명량에서 조선군이 승리한다거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려 죽을 거라는 것 워크래프트에서 레인 린이 오크와의 전투 중 전사한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그러므로 이 영화의 후반에 벡터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유고는 파이프를 기어오르다 사망할 것이고 갈리는 모터볼에서 저슈건에게 승리할 것이며 사막에서 자렘의 TUNED로 활동할 것이고 이드를 비롯한 자렘인들의 뇌는 칩으로 대체되어 있고 노바 교수는 갈리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며 갈리는 궤도 링과 융합할 것이고 그러나 이것은 페이크 결말이고 라스트 오더에서 갈리는 노바 교수에게 이매지너스 신체로서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따라서 엄청난 영상미를 선사하거나, 원작에서 보여주지 않은 디테일을 보여주어야 한다. 영상 면에서는 성공적이랄 수 있다. 거대한 화면으로 보는 자렘과 그 아래 아이언 시티의 모습은 그 자체로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며 격투 장면과 모터볼 경기 장면도 액션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자렘을 향해 검을 쳐드는 마지막 장면의 연출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총몽 영화판이 원작 만화의 명성에 흠이 되지 않는 대작이 되었기를 바라는 팬들에게는 마감이 뭔가 부족하다. 총몽 애니판의 전개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으므로 디테일 면에서는 실망스럽다. 액션 장면은 멋졌지만 싸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어려 보이지만 격투 뿐 아니라 모든 판단에 서슴이 없었고 도전을 좋아했던 원작의 갈리는 흡사 미국의 사춘기 여학생을 떠올리게 하는 철없는 알리타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알리타에게 이드는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딸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주는 착한 아빠에 가까운 캐릭터가 되었다. 모터볼이 하고싶으면 시켜줄게, 남자친구가 다쳤으면 살려줄게. 이런 캐릭터 붕괴는 노바 교수에서 절정을 이룬다. 피날레에서 자렘으로 오르는 알리타를 절단내려는 노바 교수의 썩소에서 심한 이질감을 느낀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노바 교수를 이렇게 악당으로 소모해 버리면 속편의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풀어가려는 것인가?


이 영화의 캐스팅 과정에서 화이트 워싱 논란이 있었으나, 내가 보기에는 조금 궁색하다. 공각기동대에서는 배경이 사이버펑크 아시아, 누가 봐도 동아시아 어딘가였기 때문에 스칼렛 요한슨을 주인공 역으로 쓴 것은 화이트 워싱이 맞을 수도 있지만 총몽의 고철마을은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곳이므로 누가 어떤 연기를 하든 화이트 워싱은 아니다. 더군다나 알리타의 외모는 CG로 본 모습을 더더욱 알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원작의 갈리도 본명은 요코였지만 갈리의 아이덴티티에서 과거의 '요코'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로에 가깝고 키가 좀 작긴 해도 얼굴 또한 동양인의 외모라고는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화이트 워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드. 원작에서 이드의 풀 네임은 이도 다이스케였지만 영화판에서는 다이슨 이드로 개명당했는데 크리스토퍼 왈츠라는 명배우의 캐스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대목이라 이해는 간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논란이 많은 갈리의 외형은 그녀의 입이 아닌 눈에서 아이덴티티를 느끼도록 했는데 호불호가 상당히 갈린다. 모르긴 몰라도 문어입도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불편하다는 리뷰의 대다수 의견은 이 영화가 여성 신체절단 판타지라는 점인데 원작 만화를 읽었다면 그나마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사람처럼은 생겼다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원작에서 사람 같지 않게 생긴 인물들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구별이 어려운) 의 신체 일부분이 잘려 튀어오르는 장면 앞에서 지금 우리 머릿속에 있는 생명의 정의는 무의미해진다.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도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구석기시대에 팔이나 다리가 잘린 인간은 생존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한 것처럼, 26세기의 세계에서는 사지가 절단되고 장기간 활동이 멎어도 생명은 지속되며 신체를 교체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는 지금 인류에게는 불가능한 삶의 방식이다. 지금보다는 CG가 발전한 몇 년 후 만들어질 속편의 연출이 어떻게 그려질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비교적 인간에 가깝게 그려졌고 이 때문에 신체절단 판타지 논란은 원작 만화를 감상할 때보다 더 심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원작 만화가 아닌 애니판을 기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팬들의 속편에 대한 우려는 클 수밖에 없는데, 원작 팬들만을 위해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는 어쩔 수 없는 영화판의 한계이다. 총몽 영화판이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 버금가는 대작으로 만들어졌으면 모두가 좋겠지만 아무래도 세기말적 분위기의 SF는 지금의 트렌드가 아니기도 하고 원작을 기억하는 팬들도 줄어들고 있으며 무엇보다 엘리시움 등의 다른 영화들에서 자렘과 유사한 부유도시의 이미지가 소모되고 있기 때문에 속편이 나올 수 있을지도 장담을 못 하는 상황에서 그런 모험은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속편을 꼭 보고싶은 이유는 따로 있는데 원작 후반부 - 매드맥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부 사막지역 에피소드의 영상이 무척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90년대 미-일 서브컬처가 서로 주고받은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매드맥스-퓨리 로드>가 상당한 흥행을 거두고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원작 후반부의 영화화는 매드맥스 같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투자자들이 보기에는 아류작으로밖에 안보일 테니. 하지만, 갈리가 퓨리오사처럼 남성의 어깨에 총을 거치하고 저격총을 명중시키는 장면이 스크린에서 보여진다면 매드맥스 팬들 또한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까.


(2021 추가) 이 영화는 상복은 없는데,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에 노미네이트조차 못 되었다. 예비 후보에는 들었으나, <라이온 킹>, <어벤저스: 엔드 게임> 등의 쟁쟁한 작품들 사이에서 최종 후보는 탈락..... 게다가 시각효과상은 전쟁영화인 <1917>에게 돌아갔다. <매드맥스-퓨리 로드> 또한 2016년 아카데미 6관왕을 싹쓸이했지만 시각효과상은 인연이 없었다. 당해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의 주인공은 상대적 저예산이었던 <엑스 마키나>가 차지.




팬들의 분노... where is Alita?

출처: https://www.indiewire.com/feature/oscars-2020-best-visual-effects-predictions-120216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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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양이를주셨으니